남한산성의 성벽 밖으로 가파르게 다가오는 지세는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서부터 숨을 죽이고 낮아져서 성안은 완만한 구릉성 분지를 이룬다.
물줄기들은 섬세하고도 단정해서 마을을 피해 돌아가는데,
분지 안쪽에서 여러 줄기들이 아우러지면서 단일 수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흘러내린다.
샘과 연못들이 곳곳에 고여서,
작은 물은 마을에 가깝고 큰 물은 논에 가까운데 그 사이로 농경지는 열려 있다.
왕이 머물던 행궁은 성 안의 서쪽 산록에 기대어 남쪽을 바라본다.
산성의 방면별 지휘소인 장대(將臺)들과 성안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던 지방관아와 군사들의 훈련소와 사찰과 민촌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산성은 둘레 8킬로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2.3제곱킬로미터의 분지 안에서 스스로 자족한 왕도를 이루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2> 18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