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은 처연하다.
산성 내의 수많은 문루와 옹성과 전각들 중에서 서문은 가장 비통하고 무참하다.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은 없는 모양이다.
모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결국은 받아들여진다.
삶으로부터 치욕을 체거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겨누며 목통을 조일 때 삶이 치욕이고 죽음이 광휘인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보다도 말여질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모양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2> 18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