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사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첬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도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술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김훈의 <남한산성> 4~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