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들어서면 바람소리가 들립니다. 'ㅅ'이라는 닿소리와 'ㅜ'라는 홀소리가 만나면 입술이 둥글게 말리면서 가슴에 고인 바람이 새어 나옵니다. 그러다가 'ㅍ'에 이르러 둥글게 말린 두 입술이 서로 만나고, 그러면 어느새 바람이 멈춤니다. 그렇습니다. '숲'이라는 단어, 그리고 숲 속에 들어서면 가슴에 막혀 있던 세속의 바람이 몸으로부터 나오고 새 바람이 들어옵니다. 함양 상림 숲을 거니면서 <시인와 촌장>의 <숲>을 나즈막하게 불러봅니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슬픔 고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여름 숲은 그늘이 있어서 그 아래 쉬는 맛이 있어 좋습니다. 가을에는 사그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한여름 온통 초록색이었던 이파리들이 조락의 계절로 가면서 색깔의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또한 좋습니다. 느닷없이 요즘 바람소리가 그리웠습니다. 숲에서 사는 그 바람이 그리워졌습니다. "숲"하고 길게 소리를 내면 가슴에 응어리진 걱정들이 달아날 것 같았습니다. 나무 이파리를 떨구고 이제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치켜세운 나무들, 버려야만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새순을 띄우고, 여름이면 찬란한 이파리를 피어내는 너무도 간단한 '버림의 미학'을 아는 나무들이 모여 사는 숲속을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인과 촌장>의 노래말에는 '숲을 나서야 숲이 보이고 숲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두 시간 가까이 숲을 거닐다 차를 몰아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실상사 경내에 들어서니 보광전에 걸린 풍경이 바람에 청아한 소리로 지친 나를 반깁니다. 함양 상림 숲에서 나와 실상사 경내에 들어와서야 겨우 숲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며 억지부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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