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 당신을 내 가슴에 안고 갑니다.
오늘은 밤부 롯지를 거쳐 뉴브리지(New Bridge, 1,340m) 롯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다이아목스를 먹어서 손발이 저리던 증세는 약을 끊자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돌계단을 내리오를 때마다 왼쪽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국산(외국산이라고 특별할 리는 없겠지만) 기계 60년을 사용하였으니’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고 살아왔는데, 이번에 돌아가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물론 이런 다짐도 아프고 불편할 때만 하였다가. 막상 조금 우선해져서 걷는데 큰 무리가 없으면 또 잊고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려고 하고 지켜왔으면서도, 늘상 내 자신에게는 허튼 약속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짓습니다.
▲ 내려오는 길목에 들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 계단식 논배미
신나게 내려왔던 촘롱의 계단은 이제 오르려니 살인적으로 힘이 듭니다. 경상대 정교수가 나무 이파리를 뜯어가면서 세어 보았더니 2,200 계단이라고 합니다. 지난번 사망하여 헬기로 수송된 운동장에는 풀들만이 파랗게 보일 뿐입니다. 육신은 헬기로 옮겼어도 아마 그의 영혼은 그 때 이 마을에 환하게 비추었던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입니다.
촘롱 롯지 주인이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저녁에 먹기로 되어 있는 양 두 마리를 잡으라고 했더니 그 양을 가지고 자기 마을로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다사인 축제 기간이니 양 값도 만만치 않은데다 아마도 그 양을 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혹은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촘롱에서 양은 포기하고, 뉴브릿지 롯지에서 양 한 마리를 잡아서 양고기 수육과 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중에 아내가 이번 트레킹에서 두 번째 환갑 이벤트로 맥주를 사서 우리 대원들과 포터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나도 신바람이 나서 캔맥주를 거뜬하게 한 캔을 비웠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주제에 호기를 부려본 것입니다.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오르면서 손끝의 미세혈관에도 알코홀 기운이 도는 것 같습니다. 이 기분에 술을 마시는가 봅니다.
그러나 대원들 중에는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몇 사람이 건강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자기 몸 돌보는데도 힘이 드는데, 서로 걱정하며 가져온 약들을 꺼내 먹이고, 지압을 해주는 등 최선을 다해서 동료애를 발휘합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의식이 조직을 온존케하는 동력이 됩니다. 이 뉴브릿지 롯지에서도 안나푸르나 남벽이 머리에 하얗게 눈을 이고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안나푸르나 남벽
안나푸르나 당신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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