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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의 사진 이야기
Project (I)/포토에세이

그리움

by Goh HongSeok 2012. 3. 16.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음정과 박자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잘 잡고, 게다가 멋진 춤솜씨까지 갖춘 사람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음치의 3대 요소는 (1) 큰 소리로 부른다. (2) 2절까지 부른다. (3) 앵콜을 기다린다. 라고 하는데 노래방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취기 때문에 음치의 3대 요소에 속하는 경우는 있으나, 저는 술도 못하면서 철저하게 부합됩니다. 여기까지 글만 읽으셔도 제 노래 솜씨가 어떨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우선 술을 잘 먹지 못하니 노래방을 갈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음주가무는 서로 한 뭉텅이로 움직이는 것이라서 술과 음악과 춤은 서로 긴밀합니다. 그러니 아예 노래의 첫번째 요소부터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저입니다. 어쩌다 붙들리다시피 혹은 떠밀리다시피 거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도야지 심정으로 노래방에 가게 되면, 우선 심각한 표정으로 두툼한 노래 목록 책에 고개를 박고서 노래 선곡에 세상의 고민은 모두 짊어진 듯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갖춥니다. 그러나 이 방어 수법은 노래방 섭렵의 대가들에게는 금방 그 실체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결국 녹슬고 이빠진 비장의 무기를 슬며시 내밀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래방에서는 대부분 처음 한 곡은 조금 서툴게 불러도 아량을 배푸는 법이라서 가끔 앵콜이라는 접대성 요청도 받기도 합니다만, 결국 두번째 곡을 부르고 나면 당연하게 찬밥 신세가 되게 됩니다. 주무대에서 물러나 후미진 구석에서 탬버린이나 흔들면서 주역들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소위 18번이라는 것은 있어서, 평소 즐겨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인 이동원의 <이별노래>를 먼저 부릅니다. 그 다음은 원로 가수 현인의 <베사메무쵸>를 부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노래방에서의 한계이나, 최근에 가수 이동원의 <그리움>이라는 곡에 삘(feel, 발음에 주의)이 꽂혀 그 곡을 부르고 싶은데 특정 노래방 기계에만 있어서 실전에서 연습(?)할 기회가 그나마 반으로 줄어듭니다.

오늘 안성목장으로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호밀밭의 초록 향연을 기대하고 갔는데 아직 봄맞이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붉은 황토 사이에 초록의 싹들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가슴에 감추어 두었던 그리움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듯이... 햇살이 차갑지 않은 초봄, 인적이 없는 언덕에서 가수 이동원의 <그리움>을 나무 한 그루를 청중 삼아 목청껏 불렀습니다. 음정과 박자와 감정, 게다가 춤솜씨까지 갖춘 노래방의 대가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리움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답지 않은)를 쓴 적도 있네요. 못 부르는 노래와 더불어 솜씨없는 시까지도 인내심으로 읽어 주시길...


                   가슴 속 깊은 고샅 끄트머리에 
                   혼자 알고 있는 사립문 


               사립문 삐죽히 열고 들어가면 
               자주 찾지 않아서 
               눈에 눈물이 우물처럼 고인 그리움이
               두레박 내밀며
               물 길어 마시라고 하는데

               시간의 켜 만큼

               더 두툼해지는 그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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